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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지인이 몇 년 전 아이를 국제 고등학교에 보냈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말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국제고'가 뭔지 잘 몰랐어요. 그냥 외국인 학생들 많은 학교? 영어 수업만 하는 데? 막연하게 그런 느낌이었죠.
그런데 아이가 다닌 지 1년쯤 지나고 나서, 그 지인이 한국에 잠깐 들어와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날 저녁, 삼겹살집에서 참 많은 얘기를 했죠. 그중에서도 미국 고등학교의 수업 방식은… 정말, 많이 다르더라고요.
말하는 게 수업의 절반이었다고 해요
그 지인의 아이가 처음 미국 국제고에 들어갔을 때, 제일 당황했던 건 ‘숙제’보다 ‘질문’이었다고 해요. 한국에선 보통 선생님이 묻고 학생이 대답하잖아요. 그런데 거긴 완전 반대였대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 근거는 뭐야?”
“반대로 생각하는 친구 있니?”
이게 매시간 반복된다고 해요. 특히 역사나 사회 수업에선 사실보다 해석이 중요했고, 수학이나 과학 시간에도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하는 과정”이 평가의 절반이었대요.
그 아이 말로는,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말하는 훈련이 더 힘들었대요.
사실 우리 입장에선 낯설잖아요. 우린 늘 정답을 맞히는 게 중요했고, 과정은 뒷전이었던 경우가 많으니까요.
수업이 끝나고 진짜 공부가 시작됐대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숙제의 종류였어요. 우리처럼 문제 풀기나 요점 정리 같은 게 아니라, ‘네가 흥미 있는 주제를 정해서 자료를 모아와라’ 같은 식이래요. 좀 당황스럽죠.
한 번은 환경 문제에 대해 배우는 단원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환경 문제가 발생한 사례를 조사해 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3가지 이상 제시해보라”고 했대요.
그 숙제 하나 때문에, 아이가 한 주 내내 지역 뉴스 기사 뒤지고, 구청 자료 보고, 이메일로 관계자에게 질문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단순히 점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이게 진짜 공부구나’라고 느꼈다고요.
그 숙제를 제출할 땐 그냥 프린트해서 내는 게 아니라, 앞에 나가서 발표도 해야 했대요. 그때는 영어도 서툴고 긴장도 많이 했지만, 그 경험이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어요.
성적보다 ‘관심사’가 중심이 되는 학교
미국 국제고에서는 학생마다 선택과목이 꽤 달라요. 누군가는 심리학을 배우고, 누군가는 천문학을 듣고, 또 어떤 학생은 영화 제작 수업에 들어가기도 해요.
지인의 아이는 2학년 때부터 ‘글쓰기’ 수업을 집중적으로 들었대요. 자기가 말은 잘 못해도 글로는 생각을 풀어내는 걸 좋아해서 그랬대요.
신기한 건, 이런 개인적인 선택을 선생님들이 정말 진지하게 존중해준다는 점이에요. 어느 날은 아이가 쓴 글 하나를 가지고 수업 시간에 전반적인 토론이 이뤄졌는데, 학생들이 진짜 작가처럼 자기 글에 피드백을 주고받았대요.
그 지인의 말로는, “성적보다 관심사가 중심이 되는 느낌”이었대요. 학교가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뽑으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뭘 좋아하고 뭘 깊게 파고들 줄 아는 아이’를 찾는 느낌이라고요.
그걸 보면서, 우리 아이도 그런 교육을 한번 경험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스스로 알아가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었거든요.
마무리하며
미국의 국제고등학교는 누군가에겐 문화 충격일 수 있어요. 선생님은 교과서보다 학생의 생각을 더 많이 듣고 싶어 하고, 시험보다 프로젝트가 많고, 발표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에요.
지인의 아이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어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확실히 안다”는 거였어요. 이게 참 단순한 말 같지만, 어른이 돼도 못 아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 아이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어요. 어쩌면 고등학교 시절의 그 수업 하나가, 인생의 방향을 조금은 바꾼 걸지도 모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