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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도쿄에 다녀왔어요. 사실 여행 목적은 아니었고, 친구 아이가 다니고 있는 일본 국제중학교에 대해 들어볼 일이 있어서였죠. 그 친구는 일본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아이를 국제 과정이 있는 중학교에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텐 좀 생소했어요. “일본에도 국제중학교가 있어?” 싶었죠. 우리는 보통 국제학교 하면 싱가포르나 미국, 한국에 있는 외국계 학교만 떠올리니까요.
그날 오후, 도쿄 시내에서 꽤 조용한 동네에 있는 학교에 잠깐 들렀는데, 캠퍼스 자체는 우리가 아는 일본식 사립학교 분위기였어요. 딱히 화려하진 않고, 조용하고, 뭔가 정돈된 느낌. 아이들은 복장도 단정했고, 교내에 있는 작은 정원 같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되게 차분하네?” 그게 첫인상이었어요.
조용한 교실에서 자라는 국제 감각
일본에는 우리나라처럼 명확한 ‘국제중’ 제도는 없어요. 그런데 사립학교 안에 ‘국제 과정’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반이 있고, 이게 우리가 말하는 국제중 역할을 해요. 친구 아이가 다니는 반도 그런 구조였어요. 일반 일본 학생들과는 다르게, 영어 수업이 더 많고, 역사나 사회 같은 과목도 일부는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고 하더라고요.
교실 수업 이야기를 듣는데, 저랑 가장 달랐던 건 분위기였어요. “애들이 말도 잘 안 해?”라고 제가 물었더니, 친구가 웃으면서 “아니야, 필요한 말은 해. 근데 크게 떠들거나 서로 말을 끊거나 그런 건 없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수업은 토론 중심이긴 한데, 우리가 상상하는 활발한 토론이 아니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듣는 시간도 많은 방식이에요. 발표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 글쓰기나 리서치 과제가 더 많고요. 조용히 깊이 파고드는 방식. 약간 '내향적인 엘리트 교육'이랄까요.
부모들이 이 학교를 고르는 이유
제가 알기로 친구 아이는 원래 공립학교에 다니다가 5학년쯤 국제과정 있는 중학교 준비를 시작했어요. 이유는 단순했대요. 너무 똑같은 시험 중심 교육, 줄 세우는 분위기, 그리고 획일적인 커리큘럼에 지쳤다고요.
그런데 국제과정 쪽은 수업 방식부터가 달랐대요. 예를 들어 사회 수업을 하면, 일본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동시에 같은 시기의 한국과 중국의 입장도 같이 배워요. 그리고 그걸 영어로 발표하는 수업도 있다고 해요. 교과서를 외우는 게 아니라, 주제를 가지고 스스로 정리하고 발표하는 방식.
아이도 처음엔 힘들어했지만, 자기 의견을 말로 풀고 글로 정리하는 데 익숙해지니까 훨씬 더 재미있다고 했대요. 또 하나, 부모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진학 경로'였어요. 일본에서도 이런 국제과정 출신 학생들은 고등학교 진학 시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대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해외 대학이나 일본 내의 국제학부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비용, 입시, 그리고 솔직한 인상
물론 이런 학교는 사립이다 보니 비용이 꽤 들어가요. 친구도 말했지만, 등록금만 1년에 천만 원 넘게 들고, 활동비나 교재비까지 하면 2천만 원도 넘는다고 해요. 입학도 시험을 봐야 하고, 면접이 굉장히 중요하대요. 단순히 영어 잘하는지보다는,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지를 많이 본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친구가 강조한 부분인데, “이 학교는 경쟁을 강조하지 않아”였어요. 성적순으로 줄 세우거나 1등을 가리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자율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 나만의 리포트를 만드는 게 주요 과제라고 해요.
제가 느낀 건, 이건 단순히 영어 잘하는 애들 모아 놓은 곳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라는 거예요. 경쟁보다는 탐구,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교육. 뭔가 어른들 사회랑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느낌이랄까.
정리하며 – 조용함 속에서 자라는 진짜 경쟁력
일본의 국제중학교는 겉보기에 화려하진 않아요. 광고도 잘 안 하고, 외국계 학교처럼 커리큘럼을 앞세워 홍보하지도 않아요. 대신, 학교를 직접 가보거나 졸업생 이야기를 들으면 은근히 탄탄한 교육이 있다는 걸 느끼게 돼요.
저는 그날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구 아이가 학교에서 했던 포트폴리오를 잠깐 보여준 게 기억에 남아요. 환경 문제를 주제로 자기 생각을 정리한 에세이였는데, 영어로 꽤 잘 써져 있었고, 내용도 깊었어요. 솔직히 좀 놀랐어요. 그 나이에 저런 생각을 하고 글로 정리할 수 있다니. ‘이게 조용한 교육의 힘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혹시 조용한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일본의 국제중학교 같은 방식도 한 번쯤은 고민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소리 없는 교육, 그러나 깊은 울림이 있는 학교. 일본의 국제중학교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